에세이 초안입니다- 홍길동 에세이

A robotic hand reaching into a digital network on a blue background, symbolizing AI technology.

에세이 초안입니다.

프롤로그 – 나의 시간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간다.”
— 헤르만 헤세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삶의 조각들을 들여다보았다. 흩어진 기억들이 마치 빛바랜 필름처럼 흐릿하게 재생되었고, 그 안에는 환희와 슬픔,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인생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처럼 쌓이고 짜이고 새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내 삶의 길을 따라오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어보려 한다. 때로는 후회로 얼룩진 순간이 있었고, 때로는 가슴 벅찬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지나온 길은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엮인 기억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기억들을 정성스럽게 불러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글은 다 끝난 이야기의 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여정을 위한 다짐일지도 모른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억의 조각을 모아 삶의 의미를 되새겼듯이, 나 또한 내 시간들을 다시금 길어 올려보려 한다.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놓쳐버렸는지, 천천히 음미하며 적어 내려가려 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한 줄의 문장으로 이어져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부디, 이 작은 자서전의 첫 장을 넘길 당신이 나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뜨거운 물속에서 만난 낯선 친숙함

어린 날의 겨울 오후,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갔다. 밖에서는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고, 길가의 나뭇가지들은 차가운 바람에 잔뜩 웅크려 있었다. 하지만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뿌연 김이 가득한 공기, 물소리와 수다 소리가 뒤섞인 공간. 차가운 겨울 바깥과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도 아늑한 작은 세계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옷을 벗고, 따끈한 물이 고여 있는 탕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얼굴을 마주쳤다. 우리 반 친구, 수진이었다. 학교에서는 책상 사이에 앉아 점심을 먹고 공을 차며 놀았던 사이였지만, 서로 옷을 모두 벗은 이곳에서의 만남은 기묘한 어색함을 불러일으켰다.

수진도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한껏 웅크렸다. 마치 비밀이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진도 마찬가지였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평소라면 “안녕!” 하고 씩씩하게 인사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내 등을 밀어주며 말씀하셨다.
“친구잖아, 같이 물놀이하렴.”

그제야 우리는 쑥스러움을 조금씩 덜어내고, 따뜻한 물속에서 얼굴을 마주보았다. 물장구를 치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엄마들이 등을 씻어주는 모습을 서로 쳐다보며 웃기도 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 공간은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라, 서로가 가장 솔직해지는 곳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입던 교복과 씩씩한 목소리,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잠시 벗어두고, 따뜻한 물속에서 우리는 그저 엄마의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밖에 나서니, 겨울 하늘이 한층 더 맑아 보였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다음번에 목욕탕에서 수진을 만나면, 나는 조금 더 먼저 웃으며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다고.

“친구 사이는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그날의 쑥스러움은 어쩌면 친구와 더 가까워지는 첫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뜨거운 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은 더 다르게,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어린 시절의 그 순간들은, 어색함마저도 사랑스러웠던 작은 기억들로 남아 있다.

코드 한 줄에 담긴 인생의 교훈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PC통신을 통해 작은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올려둔 프로그램이 예상 외로 인기를 끌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면, 돈을 받고 팔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창업을 결심했다. 기술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첫 번째 실패: 코드보다 어려운 경영

처음엔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낮없이 코드를 짜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업데이트를 반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 외적인 문제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었고, 고객 대응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자금 관리였다. 하지만 나는 “좋은 제품만 만들면 언젠가 알아줄 것이다”라는 순진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기대한 만큼의 수익은 나오지 않았고, 자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컴퓨터 앞에서 논리적인 코드 한 줄을 수정하는 것보다, 직원 월급을 걱정하는 일이 훨씬 더 큰 스트레스였다.

어느 날, 초라한 사무실에서 월세 납부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고지서를 바라보며 절망에 빠졌다. ‘내가 과연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단순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실패: 완벽주의가 만든 늪

나는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버그를 잡고, 디자인을 다시 수정하고, 기능을 무한히 추가하는 동안, 출시해야 할 기회들은 계속해서 사라져갔다.

그러다 우연히 스티브 잡스의 한 말을 떠올렸다.
“Real artists ship.” (진짜 예술가는 제품을 출시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완벽함을 추구하는 대신, “최소한의 기능으로 빠르게 출시하고, 고객의 반응을 보면서 개선해 나가자” 는 전략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만든 새로운 프로그램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놀랍게도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배운 교훈: 실패는 가장 위대한 멘토다

돌아보면, 내 창업의 여정은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1.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 마케팅, 고객 대응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맞물려야 했다.
  2. 완벽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부족하더라도 우선 시장에 내놓아야 피드백을 받고 개선할 수 있다.
  3. 도전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나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실패는 단지 조금 돌아가는 길일 뿐이었다.

니체는 말했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사업에서의 실패는 쓰라렸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제도 가끔 힘든 일이 닥칠 때면, 코드 한 줄을 수정하던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프로그램이 버그를 고쳐가며 점점 더 나아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성공을 위한 가장 강력한 디버깅 과정이다.

작은 노력의 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한 일이, 결국 가장 빛나는 결과를 만든다.’

나는 그 진리를 군대에서 몸소 깨달았다. 군 생활이란 대체로 주어진 임무를 그저 성실히 수행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마주한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리 부대의 컴퓨터 보안이 허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엔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보안상 심각한 문제였다. 누군가 악용한다면 중요한 정보가 새어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직접 손을 대보기로 했다.

퇴근 후, 남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에 나는 코드를 짜고 테스트했다. 비록 정식 임무는 아니었지만, 작은 노력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몇 주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군단 검열의 날이 다가왔다.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검열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만든 패스워드 보안 프로그램이 최우수 등급 판정을 받았고, 그 공로로 무려 15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진 것이다. 그 순간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고자 하면 길이 열린다.” 라는 탈무드의 문장이 떠올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묵묵히 해낸 것이 결국 큰 보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리 작은 노력이더라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만약 그때 포기하거나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외면했다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경험은 내게 하나의 확신을 심어주었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 그리고 진심을 다해 한 일은 결국 빛나게 된다는 것.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이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묵묵히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 한 번, 나의 작은 노력이 예상치 못한 큰 결실로 돌아오는 순간을 맞이하길 기대하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살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종종 ‘진실’이 아니라 ‘관점’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 확신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같은 확신을 품는다. 한 가지 사건에도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누군가를 원망하다가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결국 자기 입장에서만 진실을 본다.

얼마 전 직장에서 동료와 다툰 일이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 방향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나는 효율성을 내세웠고, 그 사람은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서로가 각자의 논리에 확신을 가졌고, 감정이 격해졌다. 결국 팀 회의에서 우리 둘의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나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상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조했다. 그런데 상사의 한 마디가 내 시선을 뒤흔들었다.

“너희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다른 길을 걸으려 하는 것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상대를 이기려고만 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그 동료의 말 역시 일리가 있었다. 꼭 내 방식만이 옳은 것은 아니었음을, 결국 우리가 같은 목적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자는 말했다. “물고기가 깊은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겉으로만 보고는 알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겉으로 드러난 명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살면서 나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가족과의 갈등에서도, 친구와의 오해에서도, 처음에는 나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들 또한 그들 나름의 이유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일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참을성이다. 신뢰는 단숨에 생기지 않고, 갈등 없이 깊어지는 관계도 없다. 우리는 부딪히며 배운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 다투고, 상대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논쟁이나 오해로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다. 방향은 다를지라도, 바람과 파도를 함께 견디면서 조금씩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 내 생각과 다를 때 화를 내기보다는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을 궁금해하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억울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의미를 남길 것이다. 모든 것이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진실은 결국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배려하고, 신뢰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믿는다.

성공의 문을 여는 열쇠, 준비된 자만이 돌파한다

어느 날 문득 기회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것은 바람처럼 흩어졌고 나는 멍하니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움켜쥘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자뿐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실패의 쓴맛, 그리고 배움

나는 한때 “기회”만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몇 년 전, 큰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찾아왔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준비가 부족했다. 시장조사도, 팀원 관리도, 사업 방향도 뚜렷하지 않았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도에 좌초되었고,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좌절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기회를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자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무리 좋은 씨앗이 있어도 기름진 토양과 적절한 물이 없다면 싹을 틔울 수 없는 법이었다.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승이었다. 나는 그 실패를 통해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준비,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그 후 나는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족했던 분야를 공부하고,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익히며, 작은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또 한 번 비슷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했고, 철저한 준비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성공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라, 끊임없는 준비 끝에 비로소 잡을 수 있는 결실이라는 것을.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걸작은 영감이 아닌 끊임없는 연습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내 성공도 결코 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라는 거친 밀가루를 반죽하고, 인내라는 불에 구워낸 노력의 결과였다.

다시 기회가 찾아올 때를 위해

성공을 맛본 후, 나는 기회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기회는 눈앞에 보일 때 잡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끊임없이 갈고닦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햄릿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준비된 자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이는 인생에도 적용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두렵지 않다. 언제 또 한 번 기회의 바람이 불어올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준비하며, 내일 찾아올 새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또 하나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때 당신은 준비되어 있는가?

변화하는 가치, 변하지 않는 진실

젊은 날의 나는 부귀공명(富貴功名)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불멸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사회적 성공과 타인의 인정이 삶의 본질이라 믿었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인간으로서의 도리라 여겼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이념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면 자연스럽게 외부 세계에서도 성공을 거둘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의 풍파를 여러 번 겪고 나니 깨달았다. 세상이 부여하는 가치란 마치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달성한 순간에는 손 안에 있는 듯하나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다시금 갈증만을 남긴다. 어쩌면 젊음이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점 더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말한다. 즉, 모든 것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를 좇고, 명예를 원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다면,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얻을 수 있다. 마치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깊은 호수처럼.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역시 나의 깨달음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또한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연의 일부이며, 어찌 보면 나를 위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흐름을 거스르려 애쓰는 대신,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손을 펴고 다시 쥐어도 결국 사라지는 것을 애써 붙잡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것들을 지켜보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과 업적이 전부일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지치게 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나 자신과 나의 마음가짐뿐이다. 부귀영화는 흩어진 먼지처럼 사라질 수 있지만, 마음속 평온은 시간이 지나도 지켜낼 수 있다.

이제 나는 과거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다. 욕망과 집착을 줄일수록 오히려 삶은 더 충만해진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흐르되, 중심을 잃지 않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되새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라는 진실을.

내가 지켜야 할 길

어느 날 문득, 내 삶의 끝자락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 마침내 마지막 길에 오를 때, 나는 어떤 얼굴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까? 그때 내가 가장 후회하지 않을 일이 무엇일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평생을 두고 소중하게 여긴 가치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어떤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이 말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삶이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의미를 구현하며 유지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도 내가 믿는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지나온 길, 그리고 깨달음

내가 지금 품고 있는 가치들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어린 시절,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크고 작은 실패 끝에 깨달았다.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방식으로’ 가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때는 성과를 위해 타협하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타협한 순간들이 쌓였을 때, 남는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갈 때마다, 비로소 어떤 성취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목표보다 가치를 지키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길, 내가 만들고 싶은 삶

앞으로 나는 스스로 세운 가치를 기반으로 삶을 일구어가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잘 해내거나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신념을 지키며, 내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나 자신의 신념에 떳떳할 것.
때때로 세상은 내게 다른 길을 제안할 수도 있다. 더 빠른 길, 더 쉬운 선택.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스스로 신념을 저버리는 순간,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어떤 선택 앞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둘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과거의 나는 실패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안다. 세상의 많은 위대한 사람들도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나아갔다. **”길을 잃어보아야 비로소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처럼, 실패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셋째, 다른 이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 것.
나는 나만을 위해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자신만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끝까지 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끝까지 지켜야 할 것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모든 길은 자신의 운명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도 분명하다. 타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내가 믿는 바를 실현하는 삶. 이를 통해 내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도 나는 두려움 없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그 가치가 나의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매순간 내 삶을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나아간다면, 마지막 순간에 나는 분명히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